정신없이 의국 생활을 하고 봉직 생활을 하면서 가정생활도 꾸려가다보니 시간이 벌써 많이 흐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너무 정신없이 사는 것 같아 좀 정리도 하고 마음 편하게 가지라고 웹진 투고할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의 의국생활’ 이라고 소개할 만한 큰 에피소드는 사실 없었던 것 같습니다. 크게 위험한 일도 없었고 행정적으로나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이 무난하게 지나간 것 같아 새삼 다행스럽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드 딴 지 6년 반밖에 안됐는데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서 예전 의국생활 분위기나 그 때의 양식을 쓰는 것은 후배들이 읽기에는 라떼처럼 들릴 것 같아 염려스럽습니다.
다만 이 자리를 주신 만큼 그 때 다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표현할 것이 있으면 표현해보겠습니다. 저한테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도전이 아마도 전공의 지원 면접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조리 있게 말을 잘못하는데 압박 면접을 하니 더 긴장을 많이 했고 정말 떨어질 것 같았는데 그래도 기회를 주셔서 제가 지금 전문의로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합격시켜주신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면접 볼 때는 그렇게 무섭고 야속하기도 했는데 교수님들 그리고 강원섭 선생님 다 정이 많고 다정한 분들이셨습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갈 길이 멀지만 교수님들께 배운 지식, 진료에서 보여주신 모습, 진료 외적인 어떤 분위기까지도 저에게는 본보기가 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거의 30년의 인생을 살다가 의국에서 4년 생활을 했는데, 그 4년이 저라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습관을 많이 바꿨습니다. 지금도 제일 많이 느끼는 건 시간약속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늦는 남편한테 잔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색깔 짙은 화려한 옷은 지금도 잘 입지 않는데 요즘은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런지 연한 꽃무늬는 가끔 입긴 합니다.
우리가 흔히 전공의 시절을 수련이라고 말하고 특히 정신과에서는 그 수련 과정을 통해 자신을 다듬는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특히 기억에 남는 몇몇 장면이 있습니다. 힘든 것 피하거나 소극적으로 하는 경향이 심한데 그걸 정확하게 직면한 적이 있습니다. 부끄러울때도 있었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죄송하기도 하고 마음이 참 불편했는데 저만큼이나 불편할 것 감수하고 말씀해주신 선배님들, 애정없이 절대 할 수 없었을 말씀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나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요즘은 후배들에게 자칫 불편할 이야기를 하면 괴롭힘이나 갑질로 오해를 살 수 있는 분위기라 아마도 수련하는 분위기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인 만큼 서로에 대한 관심이나 진솔한 의사소통은 계속 유지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 개업을 하게 되어 동문 선생님들께 과분한 응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지적인 의국의 진면모를 경험하게 되었고 개원 과정의 피로가 다 잊혀질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후배님들께 저도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고 환자들 뿐만 아니라 선배로서의 책임을 다하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아직은 한가한 진료실에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 10. 김선주.
